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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EN News] ‘데이터 고속도로’ 이번에는 뚫릴까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9. 11. 15:26

‘데이터 고속도로’ 이번에는 뚫릴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김대중정부 시절 추진한 ‘정보 고속도로’를 우리 IT 산업의 초석으로 인정한다. 전국을 촘촘히 연결한 인터넷은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다양한 인터넷 사업을 일으키며 한국을 IT 강국의 반열에 올렸다.


지난달 31일 경기 성남시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혁신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산업화 시대 경부고속도로처럼 데이터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순도 높은 빅데이터에 목말랐던 산업계는 또 한번 기대를 하고 있다. 빅데이터 개방 및 활용은 기업들이 주구장창 원했지만, 그 동안은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에 무게가 더 실렸다.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한 데이터 활성화 정책도 2014년 대형 카드사들에서 약 1억 건의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지며 무산됐다. 


대통령이 직접 총대를 매고 나서 이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활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가명정보’ 재식별 가능성이 관건 


데이터 경제 활성화의 최대 쟁점은 가명정보의 재식별 우려다. 가명정보는 추가 정보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바꾼 정보를 의미한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개인을 특정할 수 없는 ‘익명정보’보다는 비식별조치가 약한 개념이다. 데이터로서의 가치는 가명정보가 높다. 익명정보는 현재도 개인정보 보호 대상이 아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는 가명정보에 대하 정의 자체가 없어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법 개정을 통해 가명정보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정부는 가명정보를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인데, 다른 추가 정보들과 결합하면 해당 정보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우려가 남는다. 


빅데이터 전문가들도 기술적으로는 재식별 가능성이 제로(0)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비식별 기술이 계속 발전 중이라 ‘현실적인 가능성’은 낮게 본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IT기업 빅데이터 담당자는 “정부의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에서 제시한 수준에서 가명처리를 하면 현실적인 재식별 위험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 다수의 견해”라며 “의도적인 시도조차도 엄벌에 처하면 재식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정보의 가치를 중시하는 시민단체들도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31일 논평을 통해 “활용여부에 대한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안전하게 활용하든, 위험하게 활용하든 기본권은 이미 침해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서울YMCA,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공동 성명에서 “데이터 경제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췄고, 개인정보 법제 및 감독기구 일원화 같은 안전장치에 대한 내용도 없이 위험천만한 방안을 서둘러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먼저 완벽한 대책을 세워 국민을 안심시킨 뒤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시민단체들의 지적처럼 우리 개인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행정안전부), 위치정보법(방송통신위원회), 정보통신망법(과학기술정보통신부ㆍ방통위), 신용정보법(금융위원회)에 의해 보호되는데, 각 법률에 유사한 조항이 다수 있고, 총체적으로 감독ㆍ관리하는 기구도 없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빅데이터 활용이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시민사회의 우려를 파악하고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대책을 세워 공감대부터 형성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고 밝혔다. 



어떤 데이터가 공개될 것인가 


행정안전부를 비롯해 관계 부처들은 빠른 시일 안에 법률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가명정보의 개념과 함께 가명정보를 활용하거나 제공할 수 있는 범위도 개정안에 담긴다. 현행법으로도 정보 주체의 동의 하에 가능한 ‘마이 데이터’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신용정보법 개정도 추진된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정책 발표에 대한 후속 절차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진행하겠다”며 “개정안에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법안이 나와야 시민단체의 반발 강도나 산업계의 반응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통계 작성이나 학술연구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된 빅데이터를 민간에서 활용하게 됐을 때의 파급 효과는 어떤 데이터를, 어느 정도 범위에서 공개하느냐가 좌우할 전망이다. 상업적 목적이 극대화된다면 반대 여론이 강해질 게 뻔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섰어도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불발돼 정기 국회를 기약하게 된 인터넷전문은행특별법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윤철한 팀장은 “법률적ㆍ행정적 체계를 정비해서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기본이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말 필요한 곳에만 빅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빅데이터의 품질도 중요한 문제다. 이미 공공분야에서 개방되고 있는 데이터들이 있지만 피상적인 게 많은데다 표준화가 안 돼 있어 새로운 가치를 뽑아내기가 어려운 탓이다. 


한국데이터산업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광원 비투엔 대표는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잘못된 데이터의 뿌리를 잘라 품질을 끌어올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며 “빅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갈 기회는 중소기업들에게 줘야 공공의 이익을 창출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